더북(TheBook)

게다가 결과적으로 보면 비디오게임과의 인연이 길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1983년 무렵, 모든 회사가 아타리를 모방했던 마텔을 모방하며 경쟁자로 나섰다. 시장은 곧 과포화 상태로 접어들었고 급성장하던 비디오게임 산업은 붕괴했다. 마텔은 수억 달러를, 아타리는 수십억 달러를 잃었고 미국인들은 비디오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마텔은 파산할 정도가 되어서야 그들의 미래는 언제나 그래 왔듯 비디오게임이 아닌 인형과 액션 피겨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미국인들은 비디오게임에 흥미를 잃었을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칼린스키는 알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타리의 엄청난 실패작으로 악명 높은 게임, E.T.(Extra Terrestrial) 3백만 부가 뉴멕시코 땅에 그대로 묻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아케이드 게임이 성장하고 있었다. 나카야마가 이끄는 세가가 미국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마치 어둠 속 불빛이 나방을 끌어모으듯 빠르게 깜빡이는 화려한 색감의 아케이드 화면이 청소년 세대를 성공적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세가는 성공을 만끽하며 회사를 잘 지켜나가고 있었다.

칼린스키는 눈썹을 치켜들며 나카야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신이 말하는 게 닌텐도(Nintendo) 제품 같은 건가요?” 패미컴(Famicom) 또는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로 불리는 닌텐도의 8비트 시스템이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은 이 제품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칼린스키도 들었을 정도였다. 사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닌텐도는 작지만 야심 찬 일본 회사로, 1985년에 아타리와 마텔이 실패한 후 죽어있던 미국의 비디오게임 산업을 소생시키겠다고 도전했다. NES는 수년간 이어진 엄청난 저항을 견디고 마침내 변덕이 심한 대중문화의 벽을 무너뜨려 비디오게임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비디오게임 분야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현재 닌텐도는 30억 시장의 90%를 점유했다. 닌텐도의 성공 신화를 좇는 업체들이 나머지 10%를 차지했다. 세가는 이런 업체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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