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 관련 경험이 부족한 메인으로서는 이 산업을 외부인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사업을 장난감, 아케이드, 전자제품 산업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신생 산업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후일 그가 ‘노르망디 폭풍’이라고 표현한 광고 전략을 구상했다. NES를 전국 매장에 진출시키는 동시에 전면적인 광고, 홍보, 배급 공세를 펼치는 전략이었다. 이렇게 홍보가 진행되는 동안 여전히 비디오게임을 낯설어 하는 지역에는 신뢰할 만한 외모의 백인 직원들을 보냈다. 비디오게임과 일본 사업, 이 둘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 도전적인 일이었지만 메인은 언제나 돌파구를 찾아냈다. 무엇보다 그의 탁월한 매력 덕분이었다. 친목 도모에 특화된 그의 매력과 재능 덕분에 월스트리트 금융권과 소매업체로부터는 신뢰를, 구매한 물건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부모들로부터는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더욱 강력해졌다. 콘솔 판매량은 1987년 230만 대, 1988년 610만 대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놀라운 증가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1987년 1,000만 장, 1988년 3,300만 장에 달했던 소프트웨어 판매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인이 이 같은 수치를 보고 하드웨어의 판매 동력이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콘솔은 영화관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계속 다시 찾아오게 하는 힘은 영화에 있었다. 이러한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메인은 할리우드의 작품 중심 사업 전략을 본떠서 “The name of the game is the game.(게임의 생명은 게임이다.)”이라는 참신한 표현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