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필립스가 잡지에 게임 평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게임하는 모습을 본 마녀는 비디오게임을 하는 게 직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모든 아이가 그런 삶을 꿈꾸지 않는가? 그녀는 필립스가 닌텐도와 플레이어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리라는 사실을 이때 직감했다. 필립스와 이러한 비전을 두고 논의한 끝에 ‘하워드 & 네스터(Howard & Nester)’라는 만화가 탄생했다. 하워드 필립스는 선생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서 잘 모르는데도 아는 체하느라 절대 질문하지 않는 아이, 네스터에게 영리하게 게임 힌트를 알려줄 방법을 찾는 캐릭터였다. 작품을 구체화할수록 아이디어는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슈퍼맨을 상징하는 ‘S’ 자나 뽀빠이의 파이프처럼 평면적인 필립스에 입체감을 부여할 특성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필립스의 아내는 필립스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비넥타이를 매게 했는데, 만화 속 하워드도 이 나비넥타이를 매게 하는 것이었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19887월 닌텐도 펀 클럽 회원 340만 회원에게 <닌텐도 파워> 창간호를 발송했다. 잡지를 받아 본 이들 중 30%가 넘는 인원이 바로 연간 구독권을 구입하면서 <닌텐도 파워>는 유료 구독자 100만 명을 가장 빠르게 달성한 잡지로 기록되었다. 잡지를 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하워드 필립스의 영향력도 커졌다. <닌텐도 파워>가 아이들에게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라면 필립스는 초콜릿과 사탕의 제조 과정을 보여주는 괴짜 윌리 웡카****였다. 닌텐도의 마스코트가 마리오라면 닌텐도의 얼굴은 필립스였다. 피터 메인은 이러한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필립스를 전국 각지로 보내 언론 행사나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하게 했다. 닌텐도를 디즈니 테마파크인 매직 킹덤 같은 곳이 아니라 진짜 왕이 존재하는 국가처럼 표현하고자 했던 빌 화이트는 피터 메인의 이런 홍보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디즈니에서도 언론 인터뷰에 등장하는 건 미키 마우스 분장을 한 인물이 아니라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였다. 필립스를 훌륭한 재목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를 활용한다는 생각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닌텐도의 왕이 아니라 닌텐도 왕국의 어릿광대로 만들 방법이 필요했다. 메인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맥주업계 사례에서 훌륭한 해결책을 발견했다. 기네스(Guinness)1759년 최초로 에일을 생산한 이래 늘 ‘마스터 오브 브루(Master of Brew)’라는 회사의 대변인을 내세웠다. 마스터 오브 브루는 보리 구매부터 양조장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실험에 이르기까지 양조의 전 과정을 점검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선례를 본떠 메인은 필립스를 닌텐도 최초의 ‘게임 마스터’로 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워드 필립스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인지도 면에서도 마돈나(Madonna), 피위 허먼(Pee-wee Herman)‡‡‡‡, 인크레더블 헐크(Incredible Hulk)을 능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 로알드 달(Roald Dahl)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선택된 다섯 명의 아이에게 자신의 초콜릿 공장 내부를 보여주는 괴짜 천재 발명가.

†††† 1984년부터 2005년까지 디즈니의 CEO였다.

‡‡‡‡ TV 시리즈와 영화로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코믹 캐릭터. 빨간 나비넥타이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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