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나카지마는 거래 조건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본 후 이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텐겐 기술자들에게 NES에 내장된 보안장치를 피해갈 방법을 찾아보게 했다. 닌텐도 콘솔에는 보안용 칩이 들어 있었는데 그 칩에는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카트리지를 감지해 작동을 막는 ‘10NES 프로그래밍(10NES programming) 프로토콜’이 내장되어 있었다. 텐겐 기술자들은 이 코드를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다. 심지어 현미경 검사를 위해 NES 칩을 화학약품으로 벗겨내려는 시도까지 해보았다. 그런데도 이 코드를 깰 수 없었다. 결국 텐겐은 1987년 닌텐도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팩맨이나 ‘R.B.I. 베이스볼(R.B.I. Baseball)’처럼 텐겐이 만든 게임 여러 편이 인기를 얻자 나카지마는 텐겐의 수익에서 닌텐도 사용료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다시금 분노했다. 그는 보안용 칩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0NES 프로그래밍의 구성 요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뿐이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일단 사본부터 구해야 했지만, 이 코드를 찾을 곳은 닌텐도 본사와 미국 저작권협회, 두 곳뿐이었다. 닌텐도에 침입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국 저작권협회를 공략해보기로 하고 닌텐도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허구 혐의였지만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했다. 심지어 그 소송의 정확성과 긴급성을 법적으로 증언하는 진술서에 서명까지 했다. 그 덕분에 텐겐은 저작권협회에서 코드를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NES의 보안을 뚫을 수 있는 래빗(Rabbit)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토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마음껏 게임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서드파티 계약을 맺은 후 합법적으로 3편의 게임을 출시하는 동안 닌텐도의 유통 구조 또한 훤히 꿰게 되었기에 소매업체에 직접 접촉하는 것도 가능했다. 즉 텐겐은 닌텐도를 중간상으로 격하시킨 후 완전히 배제해버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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