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자, 이제 업무를 시작해볼까요?” 닐슨이 말했다.

오후에 감상한 아케이드 게임기 신제품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저녁에 TV로 본 권투 시합이 진짜 재미있었다. 칼린스키가 오기 전, 닐슨과 세가의 전 대표 마이클 카츠는 버스터 더글러스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 시리즈에 무모한 투자를 감행했었다. 버스터 더글러스는 421이라는 확률을 뚫고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을 녹아웃시켜버린 무명의 권투선수였다. 이들이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감행한 것은 젊은 권투선수의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일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인기 게임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 아웃!!을 출시한 닌텐도를 제대로 찔러보고 싶다는 데 있었다.

닌텐도의 심기를 건드리려면 더글러스의 다음 경기가 끝난 직후에 바로 출시되도록 빨리 게임을 완성해야 했다. 더글러스는 돌아오는 10월 에반더 홀리필드(Evander Holyfield)와 붙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홀리필드까지 녹아웃시켜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설계, 제작, 테스트를 마치고 게임이 완성되기까지 보통 1년 정도 소요되므로 더글러스가 마이크 타이슨을 꺾은 2월 제작에 착수해서 경기가 있는 10월까지 게임을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닐슨은 자신이 직접 뽑았고 지금까지 신뢰해온 제품 관리자 휴 보언(Hugh Bowen)에게 누군가 이미 완성해둔 권투 게임이 있는지 찾아보게 했다. 적당한 게임이 있다면 세가가 사서 더글러스의 얼굴을 붙여 판매하려는 심산이었다. 물론 우려되는 바가 전혀 없진 않았지만, 닌텐도가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 아웃!!을 만들 때도 똑같이 이 방법을 썼다. 그 게임의 제목은 본래 그냥 ‘펀치 아웃!!(Punch Out!!)’이었다. 닌텐도의 아라카와 미노루는 마이크 타이슨과 계약한 후 게임 표지에 그의 얼굴을 넣고 그를 마지막 판의 최종 대결 상대로 만들었다. 닐슨은 닌텐도에서 통한 이 방법을 세가에서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매력을 더하길 원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자신이 상대하는 프로 권투선수를 악당으로 보고 그와 싸우는 데서 재미를 느끼기보다 프로 권투선수로 변신해보는 경험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보언이 타이토에서 만든 ‘파이널 블로(Final Blow)’를 찾아오면서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신속하게 조처해야 할 상황이었으므로 닐슨은 그 게임을 빠르게 검토한 후 버스터 더글러스를 게임의 주인공으로 넣었다. 카츠는 그 계획을 승인했고 나카야마는 제네시스에 이 권투 게임을 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세가의 연구개발 팀은 원래 주인공이었던 디트로이트 키드(Detroit Kid)를 버스터 더글러스로 바꾸고 더글러스가 챔피언으로 치르는 첫 경기가 있는 10월에는 게임을 출시할 수 있도록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이 그날이었다.

닐슨은 피 튀기는 좀비 게임을 하다 말고 이렇게 말했다. “근데 고틀립(Gottleib)에도 한 번 들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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