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와 함께 더글러스의 비참한 몰골도 화면에서 사라졌다. 칼린스키는 당황한 닐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어쩐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네요.” 닐슨은 촉박한 일정으로 게임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언론은 이 일을 두고 얼마나 신나게 떠들어댈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칼린스키는 닐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두 사람은 뉴올리언스 거리를 돌아다니며 누구든 붙잡고 닌텐도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고 세가야말로 진정한 승자라는 말을 떠들어대며 승리를 만끽하려던 계획은 접어두고 방으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호텔 방에 돌아온 칼린스키는 그토록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이 20년 넘게 쌓은 칭찬 일색의 평판이 세가와 함께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질까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들고 입사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떤 정체성을 입혀야 할지 점점 더 헷갈리기만 했다. 몇 주 후에 세가 이사회에 가서 앞으로 세가의 경쟁력을 키울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리를 가로저으며 딱 한마디, “포기합시다.”라고 해야 하는 걸까?
칼린스키는 이런 생각들을 가라앉히려고 TV를 켰다. 채널이 12개뿐이긴 했지만, 호텔이 자랑한 대로 영화채널 HBO도 있었다. 영화가 나온다면야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TV에 정신을 빼앗길 수 있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숀 코너리(Sean Connery)가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제임스 본드 영화인지 아닌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