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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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 전쟁의 서막

칼린스키는 도요다와 함께 18명의 일본인 남성으로 구성된 세가 이사회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은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으로 칼린스키를 바라보았다. 케케묵은 느낌이 나는 답답한 회의실 내부에는 웃으면 사형에라도 선고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중 유일하게 호의적인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은 나카야마였다. 물론 그의 태도도 평소와 조금 달라 보이기는 했다. 평소의 그는 작은 일에도 쉽게 감격하는 서글서글한 성격을 지닌 선구적 지략가였지만 이사회에서 본 그의 모습은 활기차고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나카야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나카야마는 칼린스키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그를 먼저 믿어준 사람이었다.

“시작합시다.” 나카야마는 이렇게 말하며 칼린스키에게 묵례를, 도요다에게는 그보다 조금 짧은 묵례를 했다.

“준비됐습니까?” 칼린스키가 오늘 통역을 도와줄 도요다에게 물었다. “항상 되어 있긴 하지만, 언제라도 완벽하진 않겠죠.” 통역자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칼린스키의 목소리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그의 마음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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