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1980년대 초반에는 합병 바람이 불었다. 주력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 관련 없는 회사의 지분을 사서 관리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익숙지 않은 산업에 뛰어들면 사업이 다각화되고 시너지 효과를 볼 길이 열리며 세금 우대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칼린스키는 진짜 이유가 권력 획득에 있다는 걸 알았다. 새로운 회사를 합병했다고 발표할 때마다 마텔의 임원진들 얼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상은 링글링 브로스 서커스(Ringling Bros. Circus), 웨스턴 퍼블리싱(Western Publishing)처럼 왜 합병하는지 이해가 되는 회사부터 터코 스틸(Turco Steel), 메타프레임 펫 서플라이(Metaframe Pet Supply)처럼 합병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회사까지 다양했다. 칼린스키는 이런 식으로 회사를 확장하는 데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마텔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인 장난감 부서의 희생이 뒤따라야 할 때만 자신의 회의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그가 낸 모든 반대 의견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최종 의사 결정권은 이사회의 손에 있었기에 언제든 조용히 보복할 방법이 있었다.

1983년 비디오게임 시장이 붕괴하며 회사가 큰 손실을 볼 상황에 이르자 이사회의 공격적인 합병 전략은 마텔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원흉이 되었다. 고위험 채권 전문가 마이클 밀컨(Michael Milken)이 절체절명의 순간 도움의 손길을 내민 덕분에 회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최근 합병한 회사 중 마텔의 주력 분야와 무관한 회사들을 되파는 동시에 마텔이 빚을 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마련해주었다. 이 같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사회의 권력이 약해졌고 그 때문에 몇몇 임원진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회사에 남은 이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에 언짢아했다. 하지만 당장은 회사를 재건하는 데 칼린스키가 필요했기 때문에 보복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마텔이 다시 안정권에 진입하자 이사회는 칼린스키의 강력한 관리에 대한 보상으로 CEO직을 제안했다. CEO가 되려면 장난감 부서를 떠나야 했기에 그 자리를 딱히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칼린스키는 이러한 제안을 통해 이사회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라 해석하고 그 제안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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