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예술가라면 창작의 비밀은 공개하지 않는 법이에요.” 이 말을 한 뒤 안눈치아타는 남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전 원래 착한 데다 술까지 마셨으니 그런 원칙 따위, 신경 쓸 거 없겠죠. 사실 그냥 몇 달 동안 생각한 거예요. 혹등고래의 관점으로 쓴 《The Founding》이라는 훌륭한 책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그리고 존 릴리(John Lily)가 환각제를 복용한 얘기, 감각 차단 탱크에 들어간 얘기에 관한 자료를 읽고 흥미를 느꼈어요. 이 사람은 평생 돌고래와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내용으로 횡 스크롤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해보죠 뭐.” 닐슨이 대답했다. 보언과 안눈치아타는 충격으로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닐슨은 칼린스키가 늘 말하던 위험 부담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직감했다. 세가를 새롭게 정의할 기회 말이다. 닐슨은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안눈치아타가 방금 자신이 말한 내용의 절반만 실현한다 해도 세가에서 아주 훌륭한 게임,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될 특별한 게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뻔한 게임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세가는 특별한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서 싹튼 의심의 씨앗은 밤이 깊어가자 웅대한 와인의 물결에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칼린스키는 직원들이 저녁 내내 기억의 다락에 감춰두었던 이야기, 과거에 품었던 꿈과 희망, 또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서로 나누는 모습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남은 일주일 동안 세가의 몽상가들은 업계에서 날아오는 모든 펀치를 견뎌낼 것이다. 그러나 6개월 후 시카고에서 열릴 하계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서는 싸움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존 릴리는 뇌를 외부 자극으로부터 분리한 조건에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체온과 비슷한 소금물을 넣고 방음 장치를 하는 등 인간의 오감을 차단하는 감각 차단 탱크(sensory deprivation tank)를 고안했다. 그는 인간처럼 뇌 용량이 큰 동물에도 관심이 깊어 돌고래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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