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칼린스키는 문을 닫고 창문 앞으로 돌아왔다. 아까 잠시 바라보았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차장의 모습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전망, 이런 생활이 앞으로 그의 앞에 펼쳐질 터였다.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조용하게 문을 두드리며 도요다 시노부(Toyoda Shinobu)가 들어왔다. 부드럽게 말하는 마른 사내였다. 이탈리아제 고급 슈트에 세련된 넥타이를 맨 그의 코에는 항상 미끄러져 내릴 듯 두꺼운 안경이 걸쳐 있었다. 부사장인 도요다의 핵심 역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가 오브 아메리카와 도쿄에 있는 세가 본사를 이어주는 것이었다. 칼린스키가 사장직을 수락하자 도요다는 기꺼이 그에게 회사의 모든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칼린스키는 그를 만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가 내성적인 태도와 경직된 사진용 미소 뒤에 기민한 판단력과 지략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하는 동기는 알 수 없었다. 도요다가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서 맡은 역할에 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조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나카야마에게 동료를 주저 없이 고자질할 일본 스파이’라고 했다. 아직 칼린스키의 눈에는 그가 조직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보였지만 사실 스파이라고 해도 그렇게 행동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칼린스키는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도요다 상.”

“편하게 시노부라고 불러주십시오.”

칼린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하게 불러달라는 부탁은 ‘스파이가 아님’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의도를 숨기려는 교묘한 술책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도요다는 중역 회의가 곧 시작될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칼린스키의 머리 위로 부풀어가던 생각 풍선을 펑 터뜨렸다. “모두를 만나보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신간 소식 구독하기
뉴스레터에 가입하시고 이메일로 신간 소식을 받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