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수의 조밀성? 흐음. 생소한 단어로구나.”

“세상 만물을 수와 그 비로 표현할 수 있다는 피타고라스 님의 가르침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에요.”

“다른 관점?”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수의 비를 작은 순서부터 쭉 나열하면 빈틈없이 빽빽하게 늘어설 거라는 거죠. 세상 만물은 그 나열에 적절하게 알아서 배치될 것이고요.”

“오호라, 사물을 수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수를 사물로 표현하겠다는 역발상을 한 게로군? 기발하다! 역시 넌 천재성이 있어. 행동만 좀 더 부지런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쯧.”

“하하하,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쇼. 마테마티코이 님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불리는 위대하신 우리 히파소스 스승님의 얼굴에 먹칠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요 녀석, 날 놀리는 게냐? 허허허…. 그런데 왜 하필 ‘조밀성’이냐? ‘촘촘함’이라든지 ‘빽빽함’이라든지 비슷한 단어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다.”

“네? 어… 그러게요. 왜 그랬지?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분명 이걸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다가 잠든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제가 ‘조밀성’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걸까요?”

“그걸 내가 아느냐? 네가 꿨다는 그 장황한 꿈에서 무슨 신의 계시라도 있었나 보지.”

정말로 꿈이었나? 꿈이라기엔 너무 이상한데.

지금이 현실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마치 내가 두 개의 현실을 살아왔던 것처럼 방금까지의 삶 또한 생생하고 익숙할 뿐 아니라 심지어… 더 정겹다.

 

 


‘배우는 자’라는 뜻으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상위 제자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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