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지름길로 달려왔더니 다행히도 스승님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다. 차오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정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꼭 한번 뵙고 싶던 피타고라스 님을 실제로 만나서 대화도 나누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마테마티코이로 승격할 기회까지 얻었다.
그리고 학교로 되돌아갔던 스승님을 따라가 피타고라스 님과의 대화를 엿들은 결과 스승님은 피타고라스 님과 친구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것도 아주 막역한). 두 분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아무래도 내가 마테마티코이로 승격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단순히 내가 스승님을 설득한다고 해서 되돌릴만한 일도 아닌 듯 싶었다.
또한 두 분의 대화를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나의 이번 발표 내용은 피타고라스 님과 피타고라스학파에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셀레네 님이 앞서 기증하셨다는 연구 내용은 피타고라스학파에 위협이 되는 것 같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 걸까?
그리고 학교를 빠져나오던 중에 생전 처음 겪는 이상한 증상을 겪었는데, 놀라운 점은 셀레네 님께선 마치 전부터 알고 있던 증상인 것처럼 말씀하셨다는 거다. 심지어 내가 최근에 현실 같은 생생한 꿈을 꿨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맞혔다.
셀레네 님은 그 증상에 대해 다음에 더 얘기하자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쿠스마테코이인 나는 스승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독단적으로 피타고라스 학교에 들어갈 권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