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어와 데이터를 분리한 구조는 철학적인 면과 실무적인 면에서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명령어는 동작을 지시하는 일종의 동사고, 데이터는 그 대상이 되는 명사입니다. 하지만 기계가 실행되는 동안 데이터는 계속 변하지만 명령어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두 요소는 본질적인 측면과 역할 측면에서도 확연히 다릅니다. 게다가 실질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가변 메모리는 매우 비쌌던 반면, 나무 카드에 구멍을 뚫는 비용은 저렴했습니다. 즉,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카드 재료 수백 장이나 기계 장치는 비싸지 않았지만, 고작 숫자 100개를 저장하기 위한 기계 장치는 훨씬 거대하고 비쌌습니다.
따라서 명령어와 데이터를 동일한 메모리에 저장해야 한다는 개념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명령어와 데이터를 동일한 곳에 저장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제로 이 아이디어를 적용한 기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적용한 컴퓨터 구조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앨런 튜링(Alan Turing)입니다. 그러나 그 구조가 널리 채택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입니다.
이 두 사람 이야기와 그들 아이디어가 만들어 낸 시너지는 마치 모닥불 옆에서 마시멜로를 구우며 나눌 법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모닥불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는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