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트리니티 폭발 테스트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 이후에도 폰 노이만은 원자 폭탄 개발에 계속 참여합니다. 어린 시절 헝가리에서 경험한 짧은 공산주의 체험은 그에게 소련이 다음 적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 크고 강력한 폭탄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와 함께 수소 폭탄, 이른바 슈퍼(Super) 개발에 착수합니다.
수소 폭탄의 핵분열에서 핵융합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모델링하는 작업은 최초의 원자 폭탄 개발에 사용되었던 천공 카드 계산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1944년 여름, 폰 노이만이 목격했던 컴퓨팅 기계들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