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곧바로 탁자 위에 종이를 펼치고서 내 가장 옛 이름인 ‘서연’부터 적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건, 당시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서연이었던 내 삶의 어린 시절부터 공부했던 모든 수학 이론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적어 내려갔다.
고아원에서 모두 날 따돌릴 때, 내 유일한 즐거움이자 자랑거리가 되어 주었던 수학. 나에게 점차 무관심해졌던 새 부모님도 대외적으로 날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거론됐던 수학. 그리고 내게 처음으로 따듯한 마음을 느끼게 해준 ‘그’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수학.
당시 내 전부와도 같았던 수학은 이제 그때의 날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 밖에서 난데없이 마른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 시간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설이 왔느냐? 오랜만이구나.”
“앗, 승상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갈량1 승상2께서 막사로 들어왔고, 뒤이어 오라버니도 따라 들어왔다.
“강유3가 너도 같이 왔다고 해서 인사나 할 겸 들렀다. 그동안 못 본새 어른이 된 것 같구나.”
1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으로, 자(字)는 공명(孔明)이다(자(字)는 성년이 되는 관례 때 받는 이름인 관명과 함께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짓는 새로운 이름을 말한다). 중국 역사상 으뜸가는 지략과 충의의 전략가로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2 중국의 고대 관직으로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한다.
3 촉한의 장군으로 자는 백약(伯約)이다. 개국공신 가문도 아니고 촉한에 연고가 없음에도 촉의 대장군까지 오른 인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후계자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