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 관해서 말이냐? 허허허.”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은 그리했지만 승상의 질문에 어느 정도 수준의 답을 해야 하는지도 난감한 문제다. 유클리드의 원론10 을 기준으로 삼으면 적당할까? 아니다. 원론은 지금 동양의 수학 수준엔 너무 높은 수준일 수도.
“알았다. 그럼 우선은 가볍게 묵자께서 쓰신 묵경11 에서 묻도록 하지. 유한과 무한의 개념에 대해서 아는 대로 답해 보겠느냐?”
“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유한과 무한이라니? 묵자라면 까마득히 먼 옛날 사람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에 연관한 개념으로 명가 혜시의 무한대 무한소 개념을 답해도 좋다.”
내 두 귀를 믿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뭐? 무한대와 무한소라고? 설마 동양의 고대 수학은 이미 그런 고차원적인 개념들을 정립했다는 말인가?
“흐음…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어제 설이 네가 쓴 글을 봤을 땐 결코 허투루 공부한 게 아니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게 아닌가 싶구나.”
“아, 아니에요. 답하겠습니다, 승상님. 무한대란 한없이 큰 것을 말하고, 무한소란 한없이 작은 것을 말합니다.”
적어도 지금 이 시대의 서양 수학에서는 무한소란 개념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무한12 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비록 아르키메데스 님이 서양 최초로 무한소를 자신의 이론에 이용했다고는 하나, 그분조차도 이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고, 개념 정립 또한 하지 않았다. 서양 수학사에서 무한소란 개념이 제대로 등장한 것은 미적분의 개념이 정립된 무렵인 17세기에나 이르러서다.
10 유클리드가 집필한 책으로,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세계 최초의 수학 교과서’라 불린다.
11 묵경은 묵자가 손수 지은 경전으로, 논리학, 광학, 역학, 물리학 외에도 정치, 경제, 철학 등 묵자 사상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다.
12 자연수 1, 2, 3, …과 같이 한없이 생성하는 무한을 가무한이라 하고, 이러한 가무한의 과정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집합으로 파악할 때, 이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무한으로서 실무한이라 한다. 예를 들어, ‘자연수 전체의 집합’, ‘모든 실수의 집합’ 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무한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실무한의 존재는 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