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큰 것과 한없이 작은 것이라? 흠. 내가 알고 있는 정의와는 좀 다른데? 그렇다면 혜시가 예로 들었던, ‘1자 길이의 매를 반씩 계속해서 잘라내면, 그 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논파하는 조건문도 무한소의 정의로부터 설명해 볼 수 있겠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지금 이게 이 시대에서 논의가 가능한 수학 수준이란 말인가? 혜시라면 심지어 아르키메데스 님이나 유클리드보다도 옛날 사람이 아닌가.
승상께서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로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리셨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내가 계속 놀라기만 할 때가 아니다. 아마도 승상께서 내게 맡기려고 하셨다는 임무란, 이런 질문들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을 상정하고서 구상한 것일 텐데 말이다.
그래. 차라리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답을 하게 될지언정, 더는 재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자.
“제가 아는 대로 답을 드리자면, 만약에 무한소가 길이를 갖는 개념일 때는 승상님께서 말씀하신 혜시의 명제를 반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매를 잘라낸다 해도 무한소는 여전히 남기 때문이죠.”
“흐음?”
“… 하지만 만약에 무한소가 길이를 갖지 않는 개념이라면 영원히 자른 매는 결국 사라진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혜시의 명제를 부정한 명제, ‘매를 반씩 영원히 잘라내면 그 매는 사라진다’를 함의하는 조건문13이란 ‘매는 무한한 무한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명제와 더불어 ‘무한소는 길이를 갖지 않는다’는 명제입니다.”
13 ‘명제를 함의하는 조건’이란 ‘충분조건’을 일컫는 것으로, 충분조건은 그것이 만족되었을 때 진술의 참을 보장한다. 즉, ‘P이면 Q이다’에서 P를 Q의 충분조건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Q는 P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