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답을 마치고서 조심스레 승상의 얼굴을 살폈다. 내가 답한 내용은 적어도 서양 수학에서는 근대 후기에나 엄밀한 논의가 가능한 내용인데, 과연 승상께서는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승상님은 몇 초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셨다.
“허허허! 아주 흥미로운 대답이로구나! 마치 묵경이나 명경14을 공부한 적이 없는데도 앉은 자리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이치에 근접한 답을 낸 모양새인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설마 제 답이 원하셨던 답에 근접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래. 네가 처음 말한 대로 무한소가 ‘무한히 작은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대상이라면 혜시의 명제를 제대로 반박할 수 없지. 그래서 일찍이 혜시는 무한소를 ‘내부가 될 공간을 갖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공손룡은 혜시의 명제를 변형하여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유명한 역설15을 제시하기도 했지. 설이 네 답의 시작은 다소 이치에 맞지 않았으나, 결론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을 잘 찾아간 거란다.”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 걸까. 좀 전까지는 터무니없게도 이 시대의 수학 수준을 낮잡아 본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너의 수학적 소양이 어떠한지는 대충 알겠고… 좋아. 그럼 설아. 혹시 구장산술에 대해서는 들어봤니?”
“구장… 산술이요?”
14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명가의 경전으로, 근대 수학이나 물리학의 논증 방식과 발상에도 견줄 만한 논리학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15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제논의 역설 중에 ‘화살의 역설’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 한 점을 지나게 되는데, 한순간 동안에라도 그림자는 그 한 점에 머무르고 그다음 순간에는 또 다른 어떤 한 점에 머문다. 결국 그림자는 매 순간마다 가만히 머물러 있으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