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는 꼼짝도 못 한 채 내게 빌었다. 어떡할까? 이대로 놈을 죽인다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도 죽여야만 한다. 저자는 내 얼굴도 봤으니까. 하지만 이 둘을 모두 죽여도 곧 교대할 다음 병사들에게 발각될 거고, 적 부대는 발칵 뒤집힐 테지. 말도 없이 그저 두 발로만 도망쳐야 하는 나는 멀리 가지 못하고 잡히고 말 거다.
“살려드리면 저를 그냥 보내 주실 건가요?”
“네, 네?”
병사는 당황한 듯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저는 전쟁 중에 헤어진 저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온 사람입니다. 애초에 당신들을 해칠 마음은 없으니 이대로 저를 못 본 체만 해주세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잔뜩 겁에 질린 병사의 눈을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칼을 거두었다. 병사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져 있는 동료분도 그저 잠시 기절한 것일 뿐, 살아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병사는 덜덜 떨며 쓰러져 있는 자신의 동료를 쳐다보았지만, 아직 움직일 정신은 아닌지 멀뚱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두 분께는 본의 아니게 실례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럼 전 이만.”
나는 쥐고 있던 칼도 그의 앞에 내려놓고서 초소를 걸어 나왔다. 몇 걸음 걸어가던 나에게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사,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부디 저자와 바닥에 쓰러진 병사가 나에 대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