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에 너희가 본인의 예전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고, 그다음에는 일기를 쓰는 행위인 줄만 알았지.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더군.”
“뭐? 일기가 아니라고?”
녀석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 일기가 아니라면 나도 모르는데?”
“크크. 웃기지 마. 매번 내가 공들여서 기억을 지우고 또 지워도 말짱 도루묵이었잖아. 너도, 그 아이도. 분명 내가 모르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딴 거 없어. 서연이가 내게 알려준 건 일기 쓰는 방법뿐이었다고.”
“마지막 기회야. 그러지 말고 솔직히 대답해. 계속 답을 피했다간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대충 알지?”
“…”
일기 쓰는 게 아니었다니? 그러고 보면 아미르로 살았던 지난 삶에서 나는 일기를 쓴 적이 없긴 하다. 율리우스였던 당시에도 서연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리 성실히 일기를 쓴 편은 아니었고. 하지만….
“몰라. 진짜로. 네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아는 방법은 진짜로 일기뿐이라고.”
녀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내 눈을 응시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눈을 떳떳이 마주했다. 우리 둘 사이에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다면… 설마 그분이…?”
녀석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그분? 누구를 말하는 거지?
그대로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왔던 길로 돌아서 걸어갔다. 나는 녀석을 굳이 다시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