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산반서의 수정 작업을 도와달라고? 400쪽이 훌쩍 넘는 그 두꺼운 책을? 아니, 시간이 대체 얼마나 걸릴 줄 알고. 물론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긴 한데, 서연이의 소식을 듣게 되면 언제라도 찾아나설 준비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좀 곤란한 부탁이다.

“레오나르도 님. 그건 아무래도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그 책은 레오나르도 님의 오랜 유학 생활을 관통하는 첫 열매인 거잖아요? 그런 개인의 중대사에 손을 대는 건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내 답을 들은 레오나르도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심각한 표정이 되어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런 그가 다음으로 어떤 말을 꺼낼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면 알레시오 님, 이건 어떠십니까?”

그는 아랫입술을 몇 번 잘근잘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알레시오 님의 말씀대로 산반서 전체의 수정 작업을 부탁드리는 건 너무 과도한 짐을 안겨드리는 거 같네요. 그건 온전히 제가 책임져야 할 몫이란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독자를 위하고 수학을 올바로 전파하기 위한 책의 집필은 솔직히 지금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란 판단이거든요. 선생님의 조언과 감수 없이는 잘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음… 그럼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산반서 본서本書와는 별개로 불필요한 내용을 싹 걷어낸 소책자를 만들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아라비아 수 체계를 쉽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목적에만 충실히 제작한 가벼운 책을 말이죠. 알레시오 님께서 제게 산반서 본문의 어느 부분을 쳐내면 좋을지, 또 어디를 남겨서 요약본에 실으면 좋을지를 좀 조언해 주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반영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책에서 뺄 내용을 짚어주는 작업이라…. 그 정도라면 무리는 아니지. 나는 수락의 의미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는 레오나르도의 눈이 다시금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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