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이 흐른 1921년 17세의 존 폰 노이만이 힐베르트에게 한 줄기 희망을 안겨 줍니다. 폰 노이만은 자신의 수학 논문을 통해 힐베르트의 공리적 접근 체계에서 적어도 자연수는 러셀의 역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증명합니다. 이것이 힐베르트가 폰 노이만에게 오랫동안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 첫걸음이었습니다.
4년 후 폰 노이만은 “집합론의 공리화”6라는 겸손한 제목의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며 힐베르트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다졌습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클래스(class)7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러셀의 역설에서 집합론을 구해 냈습니다. 바로 이 개념 덕분에 집합론은 다시 일관된 이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힐베르트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알게 될 것’이라고 외친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한편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방대한 저서 <Principia Mathematica(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집합론과 논리 체계로 수학의 대부분을 공리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에 힘입어 1928년, 힐베르트는 학계에 “수학은 완전하고, 모순 없이 일관되며, 모든 명제에 대해 참과 거짓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라는 거대한 도전 과제를 내놓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증명된다면 수학은 참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모순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어떤 명제가 증명 가능한지 자동으로 판단해 낼 수 있는 완벽한 언어가 되리라고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