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배비지는 대단히 사교적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재치 있는 성격 덕분에 저녁 모임(소위 수아레(soirées)라고 부른 모임)을 자주 열었고, 다른 사람이 주최하는 모임에도 빈번하게 초대받아 그 자리를 더욱 빛냈습니다. 실제로 1843년에는 한 달 동안 하루 13건씩(일요일 포함) 초청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2
이런 배비지의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그는 당대 제일의 지식인과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 조지 불(George Boole), 조지 비델 에어리(George Biddell Airy), 어거스터스 드 모르간(Augustus De Morgan),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피터 마크 로제(Peter Mark Roget), 존 허셜(John Herschel),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등이 대표적입니다.
배비지는 학계에서도 크게 인정받아 1816년에는 왕립학회(Fellow of the 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1824년에는 계산 기계를 발명한 공로로 영국 천문학회에서 초대 골드 메달을 받았으며, 1828년부터 1839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루카시안 수학 석좌 교수직(Lucasian Chair of Mathematics)을 맡기도 했습니다.3
이처럼 배비지는 엄청난 명성과 인맥을 지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