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에이다는 19세 때 제8대 오컴 경(Lord Ockham)이자 초대 러브레이스 백작(Earl of Lovelace)인 윌리엄 킹과 결혼했고, 그렇게 에이다는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이 됩니다. 비록 병약한 몸과 자녀 양육으로 힘들었음에도 그녀는 수학과 배비지의 아이디어 연구를 계속 이어 갑니다. 에이다가 배비지에게 튜터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자 배비지는 어거스터스 드 모르간33을 소개합니다.
그 후 배비지는 수학자 조반니 플라나(Giovanni Plana)에게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과학자 회의에서 해석기관에 대한 발표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습니다. 배비지는 기쁜 마음으로 초청을 수락합니다. 그리고 이 발표는 그의 거대한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가 되었습니다.
배비지의 발표는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그래서 플라나는 그 발표에 대한 학술 논문을 출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배비지는 그 논문을 거의 2년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논문 출판이 늦어진 이유는 플라나 개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가 처음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해 보였던 열정이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플라나는 그 논문을 31세 엔지니어인 루이지 메나브레아(Luigi Menabrea)에게 작성하도록 맡겼고,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논문은 1842년 스위스 학술지에 프랑스어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