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장을 살펴보며 폰 노이만은 “컴퓨팅 기계의 발전은 불가피하며, 장차 그 기계들은 인간의 뇌처럼 자율적인 처리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계들은 통신망, 전력 인프라, 대형 산업 시설 등 주요 대규모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했습니다.32 이런 폰 노이만의 예견은 그의 꿈이자 아이디어의 씨앗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아이디어는 아직 미완성된 상태였으며, 본격적으로 꽃피우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습니다.
1940년 9월, 폰 노이만은 탄도 연구소(BRL)의 자문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수학회 산하 전시대비위원회의 수석 탄도 자문으로도 임명됩니다. 한마디로 그는 당시 여러 분야에서 손꼽히는 핵심 인재였습니다.
2년이 지난 후 폰 노이만은 성형 작약탄(shaped charge)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탄약으로 발생하는 충격파 전문가로 거듭납니다. 1942년 말, 그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영국으로 파견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자세한 그 임무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폭발 충격파에 대해 한층 더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었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