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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노트 | 언어 이름 짓기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언어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보려고 몇 페이지에 달하는 후보들을 검토했다. 훗날 여러분도 언어 개발에 착수한 바로 첫날 깨닫겠지만, 이름 짓기란 끔찍하게 어렵다. 좋은 이름이라면 이런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사용 중인 이름은 안 된다.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이 지은 이름을 도용하면, 법적, 사회적으로 매우 곤란해질 수 있다.

2. 발음하기 쉬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이 만든 언어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글로 쓸 텐데, 두세 음절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글자가 너무 많으면 짜증나서 안 쓰게 될 것이다.

3. 검색이 잘 되도록 고유해야 한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언어 이름을 구글링한 결과, 여러분이 작성한 문서가 제일 위에 나오게 하려면 어느 정도 드문 이름이어야 한다. 물론, 요즘은 대개 AI 검색 엔진이 알아서 잘 골라줄 테니 별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가령 언어를 ‘for’라고 짓는다든지 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다.

4. 다양한 문화를 통틀어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어야 한다. 지키기 어렵지만 꼭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실제로 님로드(Nimrod)라는 언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벅스 버니(Bugs Bunny)가 ‘님로드’를 욕으로 썼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 결국 명칭을 ‘님(Nim)’으로 바꾼 선례가 있다(벅스는 이 욕을 반어적으로 사용했다).19

본인이 생각한 이름이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했다면 그 이름을 사용하라. 공연히 언어의 진수를 담아보겠다고 절호의 명칭을 찾는 일에 매달리지 말라. 이 세상에 성공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을 살펴보면 금세 알겠지만,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느 정도 고유한 표식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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