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라카와를 힘들게 하는 건 소송만이 아니었다. 소송은 당연히 성가셨다. 특히 시간을 질질 끌면서 회사를 좀먹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슈퍼 닌텐도 문제가 훨씬 더 시급했다. 1991년 8월 23일 출시한 지 단 두 달 만에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벌써 50만 대를 팔았다. 숫자만 보면 꽤 잘나가는 듯했지만, 이들이 애초 예상한 숫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사위가 최고의 결과를 내길 기대하는 데 익숙해진 야마우치는 그 때문에 화가 났다. 일본에서는 슈퍼 패미컴이 승승장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미국에서 출시한 제품이 일본에서 거둔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는 대중적 인식이었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도 하위 호환성 부족이 문제가 될 걸로 생각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국의 부모들은 닌텐도가 전자제품으로 폰지 사기*를 벌이기라도 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부모들, 닌텐도의 부정을 논하다<캔자스 시티 스타>”, “닌텐도가 펼친 작전이 부모들의 공분을 사다<애틀랜타 저널>”, “닌텐도의 맹공격에 절대 굴하지 않기로 한 부모들<패트리엇 뉴스>” 등 각종 신문에서 쏟아져 나온 표제 기사 덕분에 이러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부모들은 닌텐도의 미국 출시에 큰 걸림돌인 세가가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변환 장치를 파는 데 반해 닌텐도에서는 이러한 장치마저 팔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격분했다.
*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뒤에 유입된 투자금을 수익처럼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를 일컫는 말이다. 찰스 폰지(Charles Ponzi)라는 사기꾼이 처음 사용한 사기 방식이어서 ‘폰지 사기’라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