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당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좀 전에 얘기했지만 참 찾기 어려웠습니다.” 비록 특이한 브루클린 억양이 조금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카야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했다. 가끔 등장하는 거친 표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문법적인 실수를 한다기보다는 특이한 리듬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위장용 실수를 일부러 몇 개 끼워 넣는 것 같았다. 필요할 때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행세를 하며 언어 장벽 뒤에 자신을 숨길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이 매치박스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수 차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나카야마는 다시 활짝 웃어 보였지만 어쩐지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칼린스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매치박스를 떠난 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전화를 피하고 팩스도 꺼둔 채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은 덕에 말수도 크게 줄었다. 캐런은 그의 이런 행동을 이해했기에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그를 잘 챙겨주었다. 그녀는 칼린스키가 그동안 수많은 문제를 극복하는 걸 봐왔기 때문에 남편이 언젠가는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회복하리라 믿었다. 그녀는 그가 집 안에서 어슬렁거려도 언짢아하지 않았다. 비록 세탁할 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정하게 굴면서 설거지도 잘 도와주었다.

“네, 메시지는 들었습니다. 답변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혼자 있을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여기 왜 왔는지도 아시겠군요.” 나카야마는 곧바로 칼린스키에게 세가 오브 아메리카(Sega of America)의 차기 대표 겸 CEO가 되어달라고 제의했다. 해변에서 최고 간부직을 제안받는 일이 흔하진 않겠지만 칼린스키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당시 업계에는 세가 엔터프라이즈(Sega Enterprises)의 대표인 나카야마가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대표인 마이클 카츠(Michael Katz)를 대체할 인물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카츠는 칼린스키에게 친구 같은 인물이었다. 나카야마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톰,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저는 당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최근에 끝내주는 비디오게임 콘솔 신제품도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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