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이 성공에 도취한 야마우치는 즉석밥, 시간제 러브호텔 등 수익성이 조금 낮은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보았다. 하지만 변변찮은 성과에 실망한 야마우치는 닌텐도 최고의 자산은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놀이용 카드 판매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얽히고설킨 방대한 배관이 이미 마련되어 있으므로 사업 범위를 장난감 가게나 백화점에 판매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제한하기로 하고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상품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야마우치가 이끄는 닌텐도는 비디오게임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비디오게임 분야는 사실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동전을 넣어 작동하는 아케이드 게임기, 둘로 나뉘었다. 야마우치는 비디오게임이 인기를 끌 잠재력 있다고 판단하고 두 분야에 동시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했다. 1973년, 그는 아케이드 게임 제작에 전념할 자회사 닌텐도 레저 시스템(Nintendo Leisure System)을 설립했다. 이때 탄생한 ‘와일드 건맨(Wild Gunman)’, ‘배틀 샤크(Battle Shark)’ 등의 게임이 아주 뛰어난 성과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야마우치는 닌텐도의 새로운 비전을 향해 꾸준히 정진하기로 하고 비디오게임에 막대한 자원을 할당했다. 1977년 닌텐도는 ‘컬러 TV-게임 6(Color TV-Game 6)’라는 이름으로 구두 상자 크기의 주황색 콘솔 게임기를 출시했다. 전자식 테니스 게임을 약간씩 다른 6개 버전으로 즐길 수 있었는데 대중으로부터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판매 대수가 백만 대나 되었는데도 과도한 연구개발비 투자 때문에 오히려 적자가 났다. 그래도 야마우치는 좌절하지 않았다. 닌텐도는 ‘몽키 매직(Monkey Magic)’이나 ‘블록 피버(Block Fever)’ 같은 실패작으로 삼진 아웃될 지경이었지만 아케이드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했다. 그리고 전자식 테니스 게임을 조금씩 다른 15개 버전으로 구성한 ‘컬러 TV-게임 15(Color TV-Game 15)’ 같은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신제품 또한 꾸준히 출시했다.

신간 소식 구독하기
뉴스레터에 가입하시고 이메일로 신간 소식을 받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