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닌텐도가 심중에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칼린스키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닌텐도의 철학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가 있다는 데 있었다. 닌텐도가 취한 방식이 늘 훌륭했던 건 아닌데도 이들의 전략은 보통 시장에 도움이 되었다. 완전히 무너졌던 비디오게임 산업을 일으켜 세운 닌텐도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안전요원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주문량을 다 채워주지 않는다는 소매업체의 불만, 폐쇄형 시스템을 쓴다는 개발자의 불평은 중요하지 않았다. 닌텐도의 이러한 전략은 아타리 같은 최악의 게임이 시장에 넘쳐나는 일을 막기 위한 닌텐도 나름의 방책이었다. 닌텐도는 여러 면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실제로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 칼린스키는 어쩌다 이런 지옥에 발을 들였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끝나자 이 같은 상황을 잘만 활용하면 전세를 세가에 유리하게 뒤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닌텐도가 시장에 대해 잘 아는 게 사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칼린스키가 소비자에 대해 깨우친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소비자에게는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닌텐도가 통제를 상징한다면 세가는 자유를 상징할 것이다. 이 결정이 칼린스키가 세가를 새롭게 세울 초석이 될 것이었다. 마침 그가 이 작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 슈뢰더가 주방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멍한 얼굴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령을 본 건 맞지만 악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오히려 세가에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미래를 보여준 고마운 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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