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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훌륭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닌텐도가 소매업체에 닌텐도와 텐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닌텐도가 소매업체를 법적으로 협박할 방법은 없었지만, 소매업체가 위협을 느끼도록 ‘만약에’ 카드를 쓸 정도의 힘은 충분했다. 닌텐도는 소매업체에 “만약 당신네 가게로 가던 우리 트럭이 길을 잃는다면? 우리가 더 이상 당신네 주문량을 제대로 채워주지 않는다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소매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텐겐 제품을 모두 치워버리고 손해를 보아야 했다. 닌텐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힘자랑이라도 하듯 텐겐을 고소해서 이들의 불법 게임 생산을 금지하는 법원의 명령을 받아냈다. 나카지마와 텐겐은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텐겐이라는 이름은 이렇듯 교훈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칼린스키는 월마트 전자제품 구매 담당자에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세가는 지금껏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적이 없으며 닌텐도를 골탕 먹인 적도 없었다. 세가는 그저 닌텐도보다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자일 뿐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면 닌텐도 판매량도 늘어날 겁니다. 우리가 인쇄 매체 광고나 TV 광고에 쏟아붓는 돈은 업계 전체를 돕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데, 우리 두 사람 다 ‘업계’라는 게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지 알잖습니까?”

구매 담당자는 세가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미소를 지었다.

칼린스키는 몸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대량 주문이 아니었다. 그냥 한 건, 단 한 건의 주문이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되고 세가가 그토록 원하는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칼린스키가 자신의 능력을 아주 넘어서는 일을 맡은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특히나 슈퍼 패미컴이 곧 출시될 예정이었다. 제발 한 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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