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사실 둘 다 아니었다. 그는 그저 다음 수를 계획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필립스라고 한 거 맞아요?” 회견장 뒤에 함께 서있던 닐슨이 칼린스키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소니가 아니고요?”

“그런 것 같은데….” 칼린스키도 나지막이 답했으나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바람에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칼린스키는 올라프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니 일렉트로닉 퍼블리싱 대표와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품위 있는 외교적 처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맹세컨대 링컨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올라프손에게서 약간 즐거워하는 기미마저 감지할 수 있었다. 가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적절한 시점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올라프손이 감정 섞인 말을 내뱉길 기대하는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이미 세가 부스로 돌아갔어야 하는 시간이 15분이나 지났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아라카와와 링컨이 불과 몇 주 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필립스 본사로 날아가서 콤팩트디스크 인터랙티브(Compact Disc Interactive, CD-I) 그룹의 대표 가스통 바스티앙(Gaston Bastiaens)을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니와 동맹을 맺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야마구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야마구치는 자신이 서명한 1988년 계약서에 소니와 닌텐도가 합작 CD 벤처용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경우 이에 대한 통제권을 소니가 가져간다고 명시되어 있던 걸 뒤늦게 깨달았다.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소니가 텔레비전이나 워크맨, MD 플레이어 등의 오디오 기기 생산에 주력하던 소비자 가전 업체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소니는 CBS 레코드와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를 인수하고 일렉트로닉 퍼블리싱을 만들었다. 야마우치가 보기에 이들은 야망이 지나쳤다. 소니는 이미 닌텐도 16비트 콘솔에 들어간 핵심 오디오 칩의 생산 업체였기에 소니에 이보다 더 많은 힘을 실어줄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신간 소식 구독하기
뉴스레터에 가입하시고 이메일로 신간 소식을 받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