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TheBook)

로젠은 전처럼 옆에서 감독하는 데 만족했지만, 나카야마는 카츠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츠가 영리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관리하는 법은 몰랐다. 너무 해이하고 우유부단하고 뻔했다. 게다가 그가 사내 정치를 피하는 방법은 최악이었다. 그는 사내 정치 따위는 초월했다는 고상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츠가 비디오게임 업계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세가에 필요한 건 신선한 인물이었다. 나카야마는 모회사의 대표이므로 언제든 카츠를 퇴짜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로젠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직접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카야마는 카츠를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대신 그의 날개를 꺾어놓더라도 그가 날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카츠가 개발하고 싶은 게임을 얘기하면 나카야마는 그 게임이 세가가 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카츠가 만들고 싶어 하는 게임을 만들어줄 외부 개발자를 찾아오면 그만한 비용을 들일 일이 아니라고 비웃거나 세가 내부에서 문제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느냐고 화를 냈다. 이렇게 카츠의 벌집을 쑤셔 놓은 데다 EA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문제까지 겹쳤다. 1990년 하계 CES 전날 밤 트립 호킨스는 로젠과 나카야마를 만나서 EA가 제네시스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성공했다고 알렸다. 게다가 EA는 법정 분쟁을 대비해 1억 달러를 준비해둔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카야마는 분노에 휩싸였다. 로젠도 물론 화가 났지만 나카야마처럼 소리 지르며 싸우지 않고 그 후 몇 달에 걸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협상을 이끌었다. 이렇게 협상해야 양측이 더 이득을 본다는 건 알았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클 카츠가 골머리를 썩기는 마찬가지였다. 로젠이 카츠를 지지해주려고 했던 것조차도 양날의 검이 되었다. 로젠은 자신이 데려온 카츠가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츠가 새 광고대행사를 뽑고 싶다고 했을 때 로젠은 이를 거절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협력사 보젤이 있었고 이들의 결과물이 훌륭하진 않을지 몰라도 믿을 만은 했다. 카츠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카야마와 로젠의 철학적 체스 게임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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